2018년 7월 14일 토요일

리얼밸리 인터뷰


작년 이맘때쯤 좋은 게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컨텐츠 제작자 태용과 인터뷰한 영상. 혀끝에서 맴돌던 말과 생각들을 태용이 이끌어내서 잘 정리해줬다. 조금 민망하지만 다시 보니 자극이 된다. 이런저런 일로 프로젝트에 한동안 진척이 없었는데 말한 대로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

2018년 6월 1일 금요일

배움과 편견: 차별 없는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차별이란 무엇인가? 과연 차별 없는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난 이 질문의 답을 작년 봄 머신러닝 수업에서 배웠다. 마지막 학기 수강신청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수업이 튕겨 머신러닝을 듣게 됐는데, 예상치 못하게 교수님이 정말 열정적인 분이었다. 왠만한 머신러닝 수업 같으면 이미 주어진 프레임워크나 툴을 주고 파라미터 튜닝을 하면서 이론을 가르칠 텐데 우리 교수님은 진도를 많이 빼는 덴 관심이 없고 숙제 하나하나를 정말 처음부터 다 학생이 프로그래밍하도록 시켰다. 학습 데이터와 테스트 데이터만 주고 코드는 파이썬이던 자바던 학생이 첫줄부터 다 써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뭐든지 다 찍어 먹어보고 데어 봐야 궁금증이 풀리는 나로선 좋으면서도 막학기라 너무 바빠서 반쯤은 정신 나간 채로 수업을 들었다.

울면서 숙제를 진짜 겨우겨우 하는데 한번은 Bias-free learning 을 하는 프로그램을 짜오라는 숙제가 나왔다. 대충 번역하자면 '편견이 없는 학습'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것.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생은 별 생각 없이 숙제를 해 나갔다. 편견, 그러니까 마주한 정보에 대해 어떤 선입견이나 가정도 하지 않고 판단을 내리는 프로그램? 그거 좋아 보이는데? 그거 그냥 아예 아무런 데이터도 미리 입력 안하면 되는 거잖아.

결과는?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당연하지만, 프로그램은 아무것도 못 배운다. 테스트 데이터를 입력하면 랜덤 아웃풋이 나온다. 고양이랑 개 사진을 던져주면 이게 고양이인지 개인지 동물인지 책상인지 그림인지 객체인지 할튼 그 정보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거다. 아무것도 못 배웠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게 당연하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편견=배움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편견 없이는 아무 것도 못 배운다. 어릴 때 부모님에게 받은 가르침, 학교에서 배운 것,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신체, 감각, 속해있는 물리적 세상, 이 모든 것이 크고 작은 편견으로 작용한다. 편견이 곧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고양이. 이것은 개. 이건 나쁜 짓. 이건 좋은 일. 이것은 나. 이것은 내가 아닌 것. 집합을 분류하고 나누면서 우리는 배운다. 난 이 당연하고도 단순한 ‘편견’의 실체를 알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편견이 없으면 아무런 판단을 내릴 수 없다니? 교수님은 종종 "만약 여러분이 이 강의에서 단 한가지만 기억할 수 있다면 이걸 기억해라" 라고 하곤 하셨다.



그래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완전하게 차별이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 차별은 편견에서 비롯되고 우리는 개와 고양이, 여성과 남성, 백인과 흑인,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어떠한 편견을 가지고 분류를 하며 산다. 그게 이성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사라져도 우린 키, 지능, 부, 체중, 지역, 교육, 스타일, 기호taste, 세상 모든 것에 대해 크고 작은 판단과 차별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럼 편견과 차별은 세상의 이치이니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완전히 평등한 세상이 존재할 수 없을지라도 그걸 향해 나아가지 말란 법은 없다. 차별할 거리가 사라져서 키가 167cm인 사람이 166cm인 사람을 차별하는 날이 오면 그땐 또 그걸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해야지. 인류가 지금까지 열심히 쌓아올린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는 원칙에 동의하는 한. 좀 이상주의적으로 보여도 하는 수 없다. 여기부터는 믿음의 영역이다. 내가 원래 이상적인 면이 있기도 하고.

다만 분류가 이성의 기본적인 원리라는 걸 이해하면 세상을 좀 더 너그럽게 볼 수 있다. 내가 미국에서 이주민, 유색인종으로 분류되고 취급되는 동안에도 나는 똑같이 다른 사람들을 분류한다. 레드넥, 트럭커, 힐빌리, 알파메일 등. 진짜 문제는 그러한 분류가 얼마나 정확한지, 어느 집단이 얼마나 더 수혜/불이익을 받는지이다. 차별을 인식하고 보정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자신이 수혜자인 경우엔 예리한 자기인식을 할 수 있는 지능과 지식 그리고 방향성이 필요하다. 차별하는 사람에게 비난만 하는 것 보다는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고 해결책을 생각하는 게 생산적일 수도 있다. 어찌보면 그들도 자신들의 편견으로 왜곡된 세상을 살아가는 나름 딱한 처지인 것이다.

급진좌파, 종북, 중도보수, 무성애자, 범성애자, 퀴어, 신자유주의, 아나르코 생디칼리즘, 문신한 사람, 염색한 사람, 틀딱충, 급식충, 오렌지족, 니트족, 오타쿠, 그 누구도 분류되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폭력적인 범주화나 틀린 분류에는 반발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자신이 뭔가로 정의되는 것 자체를 막을 순 없다. 90년대 청년들이 "난 나야!" 라며 분류를 거부하는 순간 그들은 엑스세대, 즉 '분류를 거부하는 자' 로 분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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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 2017년 11월 30일자 페이스북 포스팅을 다듬은 것입니다.


2017년 3월 29일 수요일

"Genius is eternal patience"


최근 The Men Who Built America 라는 히스토리채널 다큐를 재밌게 봤는데, 극중 토마스 에디슨이 자신을 찾아온 J.P. Morgan에게 미켈란젤로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Genius is eternal patience."

천재는 끝없는 인내이다. 이 말은 내게 즉시 큰 위로가 됐다. 내가 어렸을 때 창의력은 과대평가되었다. TV에선 씽크빅 광고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러자 마음은 앞서는데 이뤄낸 것이 없었다.

노래 가사, 멜로디, 앱, 게임, 시, 숱한 아이디어들이 메모장에 쌓여 갔지만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없었다. 분명히 조립할 블럭은 있는 것 같은데 완성되는 일이 없었다. 뭐가 부족한지 알아내려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유튜브 강좌를 깨작대거나 책을 사놓고 보지 않거나 하는 일들이 가끔 있을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숱하게 많은 아이디어들이 반짝이고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내가 본 많은 '발상' 들은 실현되지 못하거나 중도에 포기되었다. "내가 ~만 했어도 ~했을텐데" 라는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들려왔다.


학교에서 시작한 게임 프로젝트를 졸업 후 일주일에 두 번, 세 시간씩 작업을 해온 지 10개월쯤 되었다. 처음 이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만든 지는 2년이 넘었다. 더디지만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게임을 보면서 인내의 중요함을 깨닫는다. 기술의 발전 덕에 길찾기나 전문지식 검색 등 예전에는 몇 시간씩 걸렸을 수도 있는 일이 지금은 몇 초만에도 가능하지만, 자주 멈춰서서 전체를 봐야 하는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덴 여전히 끝없는 인내, eternal patience가 필요하다.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었다고 주장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의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끊은 별장에 머물러야 했다.


80년대 대학생들이 시를 썼다면 우리 밀레니얼들은 15초짜리 동영상을 찍어 올린다. 돈을 벌어 저축하는 대신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다닌다. 둘 중 무엇이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끈기와 인내가 앞으로는 더 희소성 있는 가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Capital Cities는 "Patience gets us nowhere fast (인내심으로는 어디에도 빨리 갈 수 없어)" 라고 노래했지만, 우리는 인내를 통해 빨리는 갈 수 없는 곳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16년 4월 30일 토요일

취직을 했습니다.


취직을 했습니다.

학교 친구들과 Steam 출시를 목표로 만들고 있는 게임 Beatstep Cowboys의 개발과 CMU에서 수강중인 머신러닝 수업으로 바쁜 가운데, 면접을 보러 오라는 회사의 요청에 5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가 6시간동안 면접을 보고 그 자리에서 오퍼를 받았습니다. 회사는 NBA2K 시리즈를 만드는 2K Sports로,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해 있습니다(정확히는 샌프란시스코 위 Novato에 있습니다).

2K Sports의 최신작 NBA2K16의 트레일러

막상 저는 스포츠 게임을 즐겨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AAA 콘솔 게임 타이틀을 만드는 회사에 프로그래머로 입사할 수 있어 좋습니다. 이곳에서 NBA2K 시리즈에 참여하며 게임 프로그래머로써의 경력과 실력을 쌓는 것이 한동안의 제 목표입니다. 남는 시간에는 Beatstep Cowboys의 개발을 계속해나갈 예정입니다. Beatstep Cowboys에 대해서는 조만간 따로 포스팅을 남기겠습니다.

"애초의 목적은 북미나 캐나다의 메이저급 게임 제작사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미국에 오면서 목표한 바를 꿈같이 이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내 작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자세하게는 "내 작품을 만들면서 돈을 버는 것" 입니다. 풀타임 인디 게임 제작자로 전향할 수도 있고, 기존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어 게임 제작 전반을 지휘할 수도 있지만, 이 둘 모두 지금 당장은 이루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한 번에 하나씩 이뤄 나가려 합니다. 늦었다면 늦었지만 그만큼 제대로 방향을 잡아 나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과거의 나를 원망하기엔 시간이 없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 어릴 땐 참 진부하다고 생각했을 법한 말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것만큼 맞는 말도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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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1일 토요일

음악을 언어로 환산한다면


보스톤 퀸시마켓 식당가에 마련된 피아노를 연주하는 시민들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음악적 능력을 다른 단위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가 될까? 자연스럽게 떠오른 척도가 언어였다.

나는 리듬, 박자, 음정 등 기본적인 음악 이론은 알고 있으니 언어로 치면 주어나 동사 형용사 정도의 기본적인 문법은 아는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악기를 연주하는 기술은 아마추어니 발음은 어설픈 것이고, 기교나 스케일도 많이 알지 못하니 단어도 그렇게 많이 아는 편은 아니겠다. 시간을 가지고 쓰고 찾아보고 공부하고 다듬으면 어느 정도는 그럴싸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원어민의 글이나 말과는 확연한 차이가 날 것이다.

음악적 리터러시(읽고 쓸 줄 아는 능력)를 요구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은 흥미롭다. 내가 일하는 하모닉스는 음악 게임을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인 만큼 수많은 사내 밴드가 있고, 작곡가가 사운드 디자인과 게임 디자인을 모두 맡는 일이 드물지 않다. 테스트 때문에 프로 드러머가 필요하면 부서에 상관없이 회사 곳곳에서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일을 할 때도 자연스럽게 음악적인 요소를 이야기하게 된다. 박자, 템포, 루프, 스케일, 코드, 조옮김, 조바꿈, 프레이즈... 막상 이들을 사용할 땐 이를 자각하지 못하지만 가끔씩 내가 가진 어눌한 음악 언어가 이곳에서 일을 할 때 필요하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음악은 기본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굳이 음악 이야기를 티내며 꺼내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때도 있다. 왠만한 밴드나 음악이야 서로 다 알 것 같고 해서 딱히 이야기를 꺼내기가 좀 그렇다. 게임의 오디오 엔진을 담당하는 나의 사수는 밴드 건즈 앤 로지즈의 레코딩 엔지니어로 일한 경력이 있음에도 그 이야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한국사람이 굳이 한국사람과 한국말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한국말을 공부하지 않는 것처럼 이곳에도 분명 그런 아이러니가 있는 것 같다.

2015년 6월 3일 수요일

근황 업데이트 - 보스톤 인턴쉽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온 지 1년이 되어 가는데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2: 미국에 갑니다) 그동안 블로그 글은 냉장고에 부탁해에 관한 걸로 달랑 한 개 썼네요. 지금은 방학이라 시간이 좀 나서 간만에 근황 업데이트나 할까 합니다.

카네기멜론대학교 Entertainment Technology Center에서의 첫 학기와 두 번째 학기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바빴습니다. 한국에서도 학교 다닐때야 늘 바빴지만 ETC에서의 지난 두 학기는 정말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바빴어요. 첫 학기는 Building Virtual Worlds 수업을 들으면서 게임 다섯 개를 만들었고, 그 중 세개를 학교 페스티벌에 출품했습니다. 저의 잡학이 게임 디자인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두 번째 학기였던 지난학기엔 제 아이디어를 가지고 팀을 구성하여 한 학기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정말로 미칠 듯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개발을 주도해볼 수 있었던 값진 기회였습니다. 그 결과물은 올해 Indiecade를 비롯한 여러 게임 관련 페스티벌에 출품 예정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그때 되면 공개하겠습니다.

참 올해 1월에는 이틀만에 게임을 만들어 내야 하는 Global Game Jam에 참가해 학교친구 두 명과 함께 The Beat, the Step, and the Cowboys라는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이걸 GameJolt.com 에 무료로 배포했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다운로드YouTube에 게임플레이 비디오도 올라왔고, 가장 유명한 게임 매거진 중 하나인 Rock, Paper, Shotgun에서도 다뤄졌습니다. 처음 유튜브 비디오와 이 기사를 봤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네요. 국적도 나이도 다른 누군가가 내가 만든 게임을 하고 좋아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벅찬 일인지.. 이 게임은 앞으로도 짬을 내서 개발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여름방학인 지금은 기타 히어로와 락밴드 시리즈의 개발사인 Harmonix Music Systems에서 오디오 엔지니어링 인턴을 하고 있습니다. 가상악기를 개발한 경력과 지난학기에 음악게임을 만든 것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네요. 실제로 하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회사 자체 엔진에도 웨이브테이블 신서사이저가 포함되어 있고요. 음악과 게임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때가 있었는데 참 얄궃게도 음악게임을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네요.

그리하여 저는 8월까지 보스톤에서 머무릅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그야말로 폭풍같았던 ETC에서의 지난 두 학기와 인턴쉽 경험을 좀 더 자세하게 다룬 글을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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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31일 일요일

EDM 대첩















요즘 한식대첩을 재밌게 보다가 삘받아서 만들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