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6일 목요일

10년간 쓴 기타를 정리하며


내일이 기타 거래하기로 한 날이라 간만에 꺼내서 열심히 닦고 기름치다가 기분이 묘해졌다.
Gibson Gothic Explorer. 마호가니목 바디에 에보니 지판. 더럽게 무겁고, 피치도 잘 나가는 기타다. 넥감은 무난하지만 뛰어나다고도 못하겠다. 작년에 SG를 산 이후로는 거의 쓸 일도 없었다.

나도 이 기타를 중고로 업어왔다. 1999년 내쉬빌에서 생산된 이놈을 샀을 땐 2004년, 즉 고2때였다. 메탈리카 제임스 헷필드의 익스플로러가 멋있어 보여서 중고매물만 기다리다가 마침내 올라온 걸 발견했는데 모은 돈에서 20만원이 부족했다. 남이 채갈까봐 마음은 급하지 당장 돈은 없지 해서 친구 10명에게 2만원씩 꾸어 기말고사 전날 기타를 사러 갔다. 나무로 된 하드케이스와 기타는 도합 8kg이 넘었지만 케이스 겉에 쓰인 "Gibson USA" 를 본 순간 들뜬 나는 비오던 날 한 손엔 우산을 들고 한 손엔 하드케이스에 든 기타를 받아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집에 왔다. 당연하다는 듯이 몸살이 났고, 기말고사는 망했다. 그래도 좋았다. 헤드 뒷면에 박힌 깁슨 아저씨의 흑백 초상화나, 12프렛에 딱 하나 있는 인레이, 무광 올 블랙의 간지, 째지는 깁슨 픽업 소리, 초콜렛 같은 냄새, 무엇 하나 맘에 들지 않는 게 없었다. 그땐 그랬다.

요 몇년 쳐다보지도 않다가, 막상 떠나 보내려니 아쉽다. 정성들여 닦고 줄을 새걸로 갈고 나니 이렇게 좋은 기타였던가 싶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그래도 제값 받고 보내는 것 같아 다행이다. 영국 갔을 때 사온 미니어처라도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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